▲ 양산재 전경 (경북 경주시 탑정동 소재)이 재실은 신라 개국전 6부장의 위패를 모신곳으로 매년 음 8월 23일 향사하고있다.
시조 장무왕 (始祖 壯武王) 사적 옛적 진한(辰韓)의 땅에 육부가 있었는데 첫째 알천양산촌장(謁川楊山村長)은 알평(閼平)인데 한나라 태종 5년 병인 3월에 표암봉(瓢巖峯)에서 나오셨고, 둘째 돌산고허촌장(突山高墟村長)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인데 형산(兄山)에서 나오셨고,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은구례마(俱禮馬)인데 이산(伊山)에서 나오셨고, 네째 자산진지촌장(紫山珍支村長)은 지인호(智仁號)인데 화산(花山)에서 나오셨고, 다섯째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은 지타(祉陀)인데 명활산(明活山)에서 나오셨고, 여섯째 명활산고야촌장(明活山高耶村長)은 호진(虎珍)인데 금강산(金剛山)에서 나오셨으니 이 육부장이다. 이에 성현의 도를 가르쳤으니 첫째는 삼강(三綱)아요. 둘째는 오륜(五倫)이요, 셋째는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 일년사이에 집을 이루어 모두문하제자들이 모두 몸소 육예(六藝)를 통달하였다. 한나라 선제지절 원년 임자 삼월 초일일에 육부장이 각각 자제들을 거너리고 알천(閼川)언덕 위에 함께 모여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위로 임금이 없이 여러 백성을 다스리므로 백성 모두가 방자하여 자기 마음대로 하니 반드시 덕이있는 사람을 구하여 임금을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하고 높은 곳에 올라 남쪽 양산(楊山) 아래를 바라보니 라정(蘿井)부근에 서기가 전광처럼 땅에 비추며, 백마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형상이 있거늘 탐색하여 보니 붉은 알 한개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더니 슬피 울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깨어 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움으로 기이하게 여겨 혁거세(赫居世)라 이름을 짓고 성을 박씨(朴氏)라하였다, 13세때 선제 오봉 원년 갑자 4월에 왕으로 삼아 진한시림성(辰韓始林城)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이라 하였다. 원년 BC57년에 호진공(虎珍公)으로서 좌거(左擧)일등이라하여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기고 3년 병인에 육부공신의 위차를 가릴제 일등공신으로 대사마대원수(大司馬大元帥)가 되었는데 지모와 용력이 많다하여 태조 혁거세왕께서 명하시기를 궁중 안의 일은 과인이 다스리고 외부일은 경이 맡아서 하라 하셨다. 또한 개국도임관 대보좌명공신 총재태재태사 보국천좌보승보(開國都任官大輔佐命功臣 冢宰太宰太師輔國遷輔左輔承輔)를 배수하셨다. 신라 법흥왕 병신(516) 무신공(武信公)이란 시호를 받으셨고 태종무열왕께서 장무왕(壯武王)으로 추봉하셨다. 순종(純宗)후 44년(1954) 경주 유림(儒林)들이 매년 음력 8월 17일에 제향을 모시며 이름을 신라제라 한다. * 참고문헌 : 동경지 양산지
시조 설거백(호진)공 연보(年譜) ㆍ기원전 117년 한무제 천수 6년 갑자 경주 금강산에 강림 ㆍ기원전 69년 한 선제 오봉 원년 임자 혁거세 양육 ㆍ기원전 57년 진한 6촌장(이최정손배설)이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 국호를 신라로 함 ㆍ기원전 55년 신라 박혁거세 3년 병인년 개국 일등공신 대사마 겸 대원수 역임 ㆍ서기 32년 신라 유리왕 9년 임진 신라 6촌을 6부로 개칭하고 설씨의 성을 사성 ㆍ서기 516년 법흥왕 3년 병신 무신공(武信公)의 시호 추증 ㆍ서기 656년 태종무열왕 3년 병진 장무왕(壯武王)으로 추봉 ㆍ서기 1971년 신라 6촌장 제각 양산재(楊山齋) 창건 신라예술제로 국가적인 행사 거행. * 참고문헌 : 삼국사기, 삼국유사, 양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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