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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유후 영정 영정

▲ 서악서원 전경(경주시 서악동 소재)

 

신라 경덕왕 때의 대학자. 자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堂). 빙설제(氷雪齊). 증조부는 잉피공(仍皮公) 조부는 나마(奈麻) 담날(談捺)이고, 아버지는 원효,어머니는 요석공주이다. 관직은 한림(翰林)에 이르렀다. 공은 나면서부터 재주가 많았고 경사(經史)에 박통하였으며 우리 말로 구경(九經)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다. 그리하여 신라 10현의 한사람이요, 또 강수(强首) 최치원(崔致遠)과 더불어 신라삼문장의 한사람으로 손꼽혔다. 삼국사기는 '우리말(方言)로 구경을 읽고 후생을 훈도하였다'라 하였고, 삼국유사에도 '우리말로 방속과 물건명을 이해하고 육경과 문학을 훈해하였으니, 지금도 우리나라의 명경(明經)을 업으로 하는 이가 전수하여 끊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 두기록을 가지고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걸쳐서 공의 이두창제설이 비롯되었으나 여러 기록에서 미루어 보아 향찰(이두)을창안한 것이 아니라 향찰을 집대성,정리한 것이며 권위자로서 육경을 읽고 새기는 방법을 발명함으로써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내지 한학의 연구를 쉽게 그리고 빨리 발전시키는데 공이 컸다. 또 관직에 나아가 문한에 관계되는 한림(翰林)직에 있었으며 신문왕 때에 국학(國學)을 설립하는 데 주동적인 역활을 한 것으로 추측한다. 성덕왕 18년(719) 나마의 관등으로서 감산사 아미타여래 조상기를 찬(撰)하였다. 이밖에 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이나 "삼국사기"를 엮을 때 이미 '또 글을 잘 지었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없다. 다만 지금도 남쪽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이 있으나 글자가 결락되어 읽을 수가 없으니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완전하게 남은 게 없음을 안타까워 하였다, 한편 공의 문적으로는 우화적 단편산문인 화왕계(花王戒)가 당시 신문왕을 풍간하였다는일화로서 '삼국사기'설총열전에 실려있다. 이 화왕계는 풍왕서라는 이름으로 '동문선' 권53에도 수록되어 있다. 선화한 뒤 계속 숭앙되어 고려 헌종 13년(1022) 홍유후(弘儒侯)라는 시호를 추증받았다. 그리고 문묘(文廟) 동무에 신라 2현이라하여 최치원과함께 종향(從享)되었으며 경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제향되었다.

* 참고문헌 :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사각목,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동사열전, 증보문헌비고, 한국 정신문화 대 백과사전.

 

 

▲ (상)홍유후 묘소(경주 보문동 소재)

(하)도동재 경산시 자인면 소재  

- 경산시 유림에서 창건

▲ (상)보문재(경주시 보문동 소재)

    (하)노추사(강원도 정성군 소재).

- 강릉시 유림에서 창건

 

홍유후(弘儒侯) 연보

ㆍ 647 진덕여왕 1년, 현 경북 경산시 자인면에서 출생

ㆍ 681 신문왕 1년,국학을 세워 구경(九經)을 우리말로 번역

ㆍ 692 신문왕 11년, 화왕계(花王戒)로 신문왕 풍간(諷諫)

ㆍ 730 성덕왕 29년, 수 83으로 서거

ㆍ 1022 고려 현종13년, 홍유후(弘儒侯)시호 추증

ㆍ 1561 조선 명종 16년, 경주부윤 이정(李禎), 서원 창건 주선

ㆍ 1562 명종17년, 서악정사 완공

ㆍ 1600 선조 33년, 경주부윤 이시발(李時發)이 서원 중건을 서두르다 중단

ㆍ 1610 광해 2년, 경주부윤 최기(崔沂) 서악서원(西岳書院) 중건 완공

ㆍ 1623 인조 원년, 현판, 토지, 노비 하사

ㆍ 1910 경산 자인면 유천리에 도동단(道東壇) 창설

ㆍ 1912 홍유후 실기 간행(순창설씨 임자보 편찬위원회 발행)

ㆍ 1924 경산시 자인면 하대리에 도동재 창건하고 재실옆에 도동단 옮김

ㆍ 1948 홍유후실기 간행-증보판(순창설씨 종약소 발행)

ㆍ 1952 홍유후 묘소 경주시 보문동 조성

ㆍ 1954 강원도 정선군 북면 구절동에 노추사(魯鄒祠) 창건

ㆍ 1959 서악서원 위패 서차(序次) 분규

ㆍ 1961 서악서원 김유신공 별도 제향

ㆍ 1984 경주 홍유후 묘소 주위 전답 1169평 확보(일본종친회 기증)

ㆍ 1986 보문재(普門齋) 창건

ㆍ 1999.3.27. 홍유후 묘소 경상북도 기념물 제 130호로 지정

ㆍ 2001 홍유후 선조, 10월 문화의 인물로 선정 문화관광부

ㆍ 2001 설총의 "이두와 통일신라시대 유학정신" 간행(한국어문학교육연구회)

ㆍ 2010.10.26 설총의 생애와 학문 학술세미나 개최(경북 경산시립박물관) - 대구대 삼성현연구소 소장 이동근 교수 주관

 

弘儒侯 碑文

 

赫赫優優薛氏之爲姓也 萬世無彊傳之子傳之孫 皆著錦衣高官致卿 不絶累世 繼之弘儒侯 身被禮義口誦章句 道統心法百世之師宗則 薛氏中興厥惟大哉 惟我弘儒侯道之廣大 天理之高標則 自古及今未聞如斯之聞故 玆以小子情實難露 然而 不忘其盛大之德 又不忘其師宗之道 以數三文字 記之於石 此石 足以我公之爲尊而 萬世無彊之德行矣

後學 參判 南陽 鄭 允 弼 撰

 

 

홍유후 비문 풀이

 

혁혁하고 우우한 설씨의 성으로 만세무궁토록 아들에게 전하고 손자에 이르러 모두가 비단옷을 입은 고관이 되어 여러세대가 끊어지지 아니하였으매 홍유후가 이어서 몸소 예의를 갖추고 장구를 익혀 도통한 심법은 백세토록 모든 사람이 숭상함이니 설씨의 중흥함이 오직 컸도다. 우리 홍유후의 도덕이 광대함은 천리의 높은 표본임으로 예로부터 이제까지 이와같음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소자가 실정의 내막을 표현하기 어려우나 그러나 그 성대한 덕을 잊지 못하고 그 높이 숭상하는 도를 잊지 못하여 두어줄 문자로써 비석에 기록하였으니 이 비석으로써 족히 우리공을 높일줄 알아 만세무강한 덕행이 될 것이다.

후학 참판 남양 정 윤 필 지음